징계무효확인의소 / 대전지방법원 2026. 9. 3. 선고 2024가합204973 판결
안전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방식의 '법규준수형 준법투쟁'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상 쟁의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를 위법한 태업으로 보아 한 징계처분은 징계사유 부존재로 무효
피고 한국철도공사는 철도여객·화물운송사업을 영위하는 공기업이고, 원고들은 피고 소속 근로자이자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조합원입니다.
철도노조는 2023년 임금협약 교섭이 결렬되어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무렵인 2023. 8. 12. 위원장 명의의 투쟁명령을 전 조합원에게 전파하였고, 조합원들은 2023. 8. 21.부터 시간외·휴일근무를 거부하는 한편 2023. 8. 24.부터 9. 1.까지 제한속도·안전속도 유지, 제동시험과 입환 절차의 철저한 준수, 회복운전·정차시간 단축 자제 등 운전취급규정과 운전작업내규를 엄격히 지키는 방식의 준법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피고는 이 준법투쟁이 위법·부당한 쟁의행위(태업)라는 전제에서, ① 피고가 투입한 대체인력의 정비작업을 저지한 정비 직군 근로자(원고 1~9), ② 회복운전 지시에 응하지 않고 열차를 지연 운행한 기관사(원고 10, 11), ③ 평상시와 다르게 입환작업을 지연하여 예정 작업 일부를 미시행한 수송원(원고 12, 13), ④ 노조 사무처장으로서 준법투쟁을 기획·주도한 자(원고 14)에 대하여 성실의무·복종의무·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견책·감봉 1월·정직 1월 등의 징계처분을 하였고, 재심에서도 이를 유지하였습니다.
원고들은 이 사건 준법투쟁은 쟁의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징계사유가 부존재하여 징계가 무효이고, 설령 일부 징계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양정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징계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핵심 쟁점
노동조합의 투쟁명령에 따라 조합원들이 제한속도 유지, 제동시험·입환 절차 준수 등 운전취급규정과 안전규정을 평상시보다 엄격히 지키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열차 지연 등이 발생한 경우, 이것이 노동조합법 제2조제6호의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인 쟁의행위(태업)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준법투쟁으로 인한 업무 저해 여부를 사실상 관행화된 통상적 업무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관련 법규와 내규에 비추어 적법·정당한 업무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그리고 근로자가 준수하려 한 내용이 산업안전·보건 법규가 요구하는 기준의 범위 내에 있는지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대체인력의 안전교육 이수 여부와 작업안전계획서 확인을 요구하며 정비작업을 저지한 행위, 회복운전 지시에 응하지 않고 정시운전한 행위, 규정에 따른 입환 절차를 준수하여 작업이 지연된 행위, 준법투쟁을 기획·주도한 행위가 각각 성실의무·복종의무 위반 등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판결 내용
법원은 이 사건 준법투쟁은 노동조합법상 쟁의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임을 전제로 한 각 징계처분은 모두 징계사유가 부존재하여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1. 준법투쟁의 유형 구분
법원은 준법투쟁을 ① 산업안전·보건 법규나 단체협약·취업규칙의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업무를 하거나 위반사항의 시정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는 법규준수형과, ② 정시 출퇴근·휴가 사용·시간외근로 거부와 같이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개별적으로 동시에 행사하여 업무를 저해하는 권리행사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원고들은 운전취급규정·운전작업내규의 제한속도 유지, 제동시험·입환 절차 준수 등 관련 규정을 엄격히 지키는 방법으로 준법투쟁을 하였으므로 이 사건 징계사유와 관련된 부분은 법규준수형 준법투쟁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투쟁명령에 포함된 시간외·휴일근무 거부는 권리행사형이나, 징계사유와 관계된 것은 법규준수형 부분이므로 이에 대해서만 검토).
2. 법규준수형 준법투쟁의 쟁의행위 해당 여부 - 쟁의행위 해당하지 않음
쟁의행위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인데(노동조합법 제2조제6호), 여기서 '업무'는 적법하고 정당한 업무를, '정상적 운영'은 근로관계법규와 노무계약에 비추어 적법한 지휘명령에 기한 운영을 의미합니다(대법원 76도357 판결 참조). 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① 법규준수형 준법투쟁이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인지는 사실상 관행화된 통상적 업무가 아니라 법률적 평가의 관점에서 적법·정당한 업무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관행화된 업무를 기준으로 삼으면 법규준수형 준법투쟁은 언제나 쟁의행위가 되고, 적법하지 않은 업무까지 법이 보호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② 근로자들이 준수하고자 한 내용이 해당 법규가 객관적으로 요구하는 산업안전·보건 기준의 범위 내에 있거나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 의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근로자에게는 그 법규의 위반 상태에서 근로를 제공할 의무가 없으므로 사용자의 노무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쟁의행위로 볼 수 없습니다.
③ 원고들이 준수하려 한 직종별 세부지침은 상당수가 철도차량운전규칙(국토교통부령)에 근거한 것으로 철도차량의 안전운행에 관한 사항이고, 이는 사용자인 피고의 산업안전·보건 의무에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 준법투쟁은 원고들 자신과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피고의 안전규정을 준수한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가 아니며, 기존에 안전규정에 위반된 업무 관행이 있었고 그 관행에 따르지 않아 업무 수행에 지장이 생겼더라도 업무의 정상적 운영이 저해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④ 안전투쟁을 쟁의행위로 보아 정당성 심사와 형사·민사책임 판단으로 나아가면, 정당성 판단기준이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가 부담할 책임의 범위가 확대되어 단체행동권 행사를 사실상 위축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헌법 제33조의 보장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헌법재판소 97헌바23 결정 참조).
3. 개별 원고별 징계사유의 존부 - 모두 징계사유 부존재
㉠ 정비 직군(원고 1~9) - 원고들은 피고에게 대체인력의 신분·직종·법정 안전교육 실시 여부, 작업계획서·작업안전계획서의 확인을 요구하였으나 피고는 구체적 답변 없이 대체인력을 투입하였습니다. 이러한 확인 요구는 피고의 산업안전보건관리 세칙에 따른 정당한 요구이므로 대체인력의 정비작업을 방해하였다는 징계사유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 기관사(원고 10, 11) - 준법투쟁 세부지침은 제동시험 준수, 안전한 속도의 역 진입, 승강장 안전문 확인, 회복운전·정차시간 단축을 안전보다 우선하지 않는 것으로, 철도차량운전규칙 제25조와 피고 운전취급규정 제4조의 안전확보 의무에 부합하며 그 자체로 내부규정 위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운전취급규정상 도착·출발시간 준수의무를 안전규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개별 지연 건 역시 인계 시점에 이미 지연된 열차, 31~55mm의 강우, 선행열차와의 경합, 급행 변경 지시와 안내방송 미비, 제한속도 40km/h 구간 등 외부 요인이 확인되어 고의 지연을 인정하기 어렵고, CCTV상 화장실 이용 시간도 약 1분에 불과하였습니다.
㉢ 수송원(원고 12, 13) - 운전취급규정과 오봉역 운전작업내규는 입환작업 전 확인·통고의무, 수전호에 의한 입환전호 의무, 입환방법 사전 협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평상시와 달리 관련 규정을 준수하며 입환작업을 한 것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 노조 사무처장(원고 14) -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이를 기획·주도하였더라도 징계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판결 의의
이 판결은 안전 법규·내규를 규정대로 지키는 방식의 준법투쟁은 그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발생하더라도 노동조합법상 쟁의행위가 아니며, 따라서 쟁의행위의 정당성 요건(조정절차·찬반투표 등)이나 태업의 성립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징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단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종전 판례는 집단적 연차 사용이나 집단적 시간외근로 거부와 같은 권리행사형 준법투쟁을 쟁의행위로 본 사례가 많았는데(대법원 91도326 판결 등), 이 판결은 준법투쟁을 두 유형으로 구분하고 법규준수형에 대해서는 '관행화된 업무'가 아닌 '적법한 업무'를 기준으로 업무 저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사업장의 '통상 업무'와 '규정상 업무' 사이에 간극이 있는지를 점검하여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의 징계는 열차 지연과 작업 미시행이라는 결과에서 출발하였으나, 법원은 그 결과가 안전규정을 지킨 데서 비롯되었다면 관행과 다르다는 이유로 징계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규정대로 하면 정시 운행이나 작업량 달성이 어려운 구조라면, 그 자체가 사용자의 안전관리 문제이지 근로자의 태업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노조가 준법투쟁을 예고한 사업장은 징계 대응에 앞서 문제되는 내규·매뉴얼과 실제 운용 방식을 대조하여, 근로자가 준수하겠다는 내용이 법규·내규의 요구 범위 안에 있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대체인력 투입 시 안전 관련 절차를 갖추어야 합니다. 정비 직군 원고들에 대한 징계가 무효로 된 직접적 이유는 근로자들이 대체인력의 법정 안전교육 이수 여부와 작업안전계획서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였음에도 사용자가 답변 없이 투입을 강행한 데 있었습니다. 대체인력 투입 계획이 있다면 안전교육 이수 증빙, 작업계획서·작업안전계획서를 사전에 준비하고 노조의 확인 요구에 서면으로 회신하는 절차를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절차를 갖추지 않은 채 근로자의 확인 요구를 '작업 방해'로 규정하면 징계사유 자체가 부정될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셋째, 지연·미시행의 원인 분석이 징계 성패를 좌우합니다. 법원은 기관사별 지연 건마다 인계 시점의 기존 지연, 강우, 선행열차 경합, 지시 변경 등 외부 요인을 일일이 확인한 뒤 고의성을 부정하였습니다. 준법투쟁 기간의 업무 지장을 징계사유로 삼으려면 개별 지연 건별로 외부 요인을 배제한 뒤 남는 근로자의 고의적 행위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하며, 기간 전체의 지연 통계나 '관행보다 느렸다'는 정도의 입증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만 이 판결은 제1심 판결이므로 항소심의 판단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투쟁명령에 포함된 시간외·휴일근무 거부와 같은 권리행사형 부분은 이 사건의 판단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권리행사형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종전 판례에 따라 별도로 판단되므로, 이 판결을 준법투쟁 전반이 쟁의행위가 아니라는 취지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