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지위확인 등 / 대법원 2026. 2. 12. 선고 2025다212646 판결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가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고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면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고,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고 적정한 근로조건도 찾을 수 없다면 직접고용 시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
원고들은 피고(민간투자사업을 시행하는 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외주업체에 고용되어 파트장·주임·사원으로서 피고의 영업소 등에서 업무를 수행해 온 근로자들입니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으며 피고를 위하여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피고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근로자지위확인(직접고용 간주 또는 직접고용의무 이행)과 임금 차액 등의 지급을 청구하였습니다.
원심(대전고등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직접고용 시 원고들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에 관하여는 피고 소속 근로자 중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고 달리 적정한 근로조건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피고와 피고보조참가인(외주업체)은 ①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의 오해, ②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의 우선 적용, ③ 실효의 원칙 위반을 주장하며 상고하였고, 원고들은 직접고용 시 적용될 근로조건에 관한 원심 판단을 다투며 상고한 사안입니다.
핵심 쟁점
용역계약의 형식을 취하였으나 업무 범위가 한정되지 않고 원청의 규정·지침과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경우,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과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이 인정되어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민간투자법 제3조제1항의 우선 적용 조항을 근거로 파견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근로자들이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다가 근로자파견관계를 주장하는 것이 실효의 원칙에 반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고 당사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이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정하여 적용할 수 있는지,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을 수 없을 때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판결 내용
대법원은 원고들, 피고, 피고보조참가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긍하였습니다.
1.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 - 근로자파견관계 인정
대법원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 제3자의 상당한 지휘·명령, ㉡ 제3자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 ㉢ 원고용주의 독자적 인사·노무 결정 권한 행사, ㉣ 계약 목적의 한정성과 업무의 구별·전문성, ㉤ 원고용주의 독립적 기업조직·설비 보유 여부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 법리(대법원 2010다106436 판결 등)를 전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심이 든 다음 사정에 비추어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① 용역계약 내용 자체로도 피고가 외주업체에 업무를 지시할 수 있어 업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한정되지 않았고, 계약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는 등 통상적인 도급계약으로 보기 어려운 점
② 외주업체와 소속 근무자들은 피고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규정·지침을 위반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업무 수행과정에서 피고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지시를 받고 피고에게 보고한 점
③ 소속 근무자들이 피고의 회사명이 기재된 근무복과 명찰을 착용하고 피고 소속 직원과 유기적으로 피고의 업무를 수행하여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점
④ 외주업체에 별다른 전문성이 없고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확인할 자료도 없으며, 오히려 피고가 외주업체에 각종 시설물, 사무실, 메신저 ID, 이메일 등을 제공한 점
⑤ 2016년 용역계약 이후 입사한 원고들도 그 이전 입사자와 비교하여 업무 수행 방식·내용·절차 등 주요 부분에서 달라진 점이 확인되지 않는 점
2. 민간투자법의 우선 적용 여부 - 부정
민간투자법 제3조제1항이 민간투자사업에 관하여 관계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더라도,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는 민간투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이므로 파견법에 따른 판단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1다310484 판결 참조).
3. 실효의 원칙 위반 여부 - 부정
실효의 원칙 적용 여부는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쌍방의 사정, 객관적 사정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는데(대법원 91다30118 판결 참조), 원고들이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고 피고에게 원고들의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습니다.
4. 직접고용 시 적용되는 근로조건 - 기존 근로조건 적용 (원고들 상고 기각)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제3항에 관한 기존 법리(대법원 2019다222829, 222836 판결)를 다음과 같이 재확인하였습니다.
㉠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등으로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은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 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더라도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을 수 없다면 파견법 제6조의2제3항제2호에 따라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 위 조항은 구 파견법(2007. 7. 1. 시행 전)의 해석으로도 도출될 수 있는 내용을 명문화한 것이므로, 구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이 간주되는 근로자의 근로조건도 같은 방법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9다223303, 22331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원심은 ① 직접고용간주일 또는 직접고용의무 발생일 당시 피고 소속 직원 중 원고들과 같이 파트장·주임·사원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없었던 점, ② 피고 소속 직원들은 관련 부서 직원 또는 영업소장 지위에서 외주업체 근무자들을 지시·감독하는 관계에 있어 그 업무가 원고들의 업무와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점, ③ 피고의 운영비용은 제한되어 있고 그동안 파견근로를 계속 확대 실시하여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할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기 어려운 점을 들어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하였고, 대법원은 이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판결 의의
이 판결은 새로운 법리를 선언한 것은 아니나,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대법원 2010다106436 판결)과 직접고용 시 근로조건 결정 법리(대법원 2019다222829, 222836 판결)가 하나의 사건에서 함께 적용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특히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더라도, 사용사업주에게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고 달리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을 수 없다면 임금 등 근로조건은 기존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점에서, 불법파견 분쟁의 '지위 확인'과 '임금 차액' 국면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도급·용역 운영 사업장은 이 사건에서 파견의 징표로 평가된 요소를 기준으로 계약과 현장 운영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금액이 확정되어 있지 않거나 원청이 수시로 업무를 지시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가 열려 있는 계약서는 그 자체로 도급성을 약화시킵니다. 현장에서는 원청의 상세한 업무 규정·지침의 직접 적용, 원청 명의 근무복·명찰 착용, 원청의 메신저 ID·이메일·사무실 제공, 원청 직원에 대한 직접 보고 체계가 실질적 편입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수급업체가 인력 선발·교육·근태 관리를 독자적으로 수행한 기록과 고유한 전문성·설비를 입증할 자료를 갖추고 있는지도 함께 확인하여야 합니다.
둘째, 개별 사업법이나 장기간의 권리 불행사를 이유로 한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민간투자법과 같이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 조항이 있더라도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는 파견법에 따라 판단되며, 근로자들이 파견관계의 성립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장기간 근무해 왔다는 사정만으로는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용역계약이 갱신되거나 수급업체가 변경되더라도 업무 수행 방식이 동일하게 이어졌다면 그 이후 입사자에게도 같은 판단이 미친다는 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셋째, 근로조건 부분은 사용사업주와 근로자 양측 모두에게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기존 근로조건이 적용된 것은 피고 소속 직원들이 관리·감독 업무만 수행하여 원고들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원청 직원과 외주 인력이 같은 공정·같은 업무에 혼재하여 근무하는 사업장이라면 파견법 제6조의2제3항제1호에 따라 원청 취업규칙상 근로조건이 적용되어 임금 차액 부담이 발생합니다. 근로자 측에서 임금 차액을 청구하려면 비교 대상 근로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사용사업주의 직군별 임금체계와 이미 직접 고용된 다른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 등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다만 기존 근로조건이 적용된다고 하여 사용사업주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고용의무 자체는 그대로 발생하고, 직접고용의무 불이행에 따른 과태료와 무허가 파견 역무를 제공받은 데 대한 형사책임은 근로조건 수준과 무관하게 문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의 결론은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의 부재와 피고의 운영비용 제한 등 구체적 사실관계에 기초한 것이므로, 법원이 사용사업주의 임금체계를 참고하여 근로조건을 정한 다른 사례와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